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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小考

1. 딱히 말할게 없는 결과

사실 크게 할 말은 없다. 무엇보다 글을 쓰다가 중간에 한 번 날려먹어서 다시 쓸 의욕이 많이 사라졌고(;;), 워낙에 예상대로 이루어지고 예상대로 전개되며 예상대로 결론이 나와서 별로 변화된 부분을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요즘 언론들이 난리법석을 떠는 것처럼 '평화'에 뭔가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는걸 보느니 차라리 구한말 친일파들이 백성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말을 더 믿겠다. 북한은 그만큼 악한 나라가 아닐지 몰라도, 김정은 정권은 그만큼 악한 존재이다. 그 할애비 때부터 그래왔듯이.

양측 정상이 (사실상) 후계자 격으로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걸 생각하면, 문재인과 김정은을 노무현과 김정일로 바꿔도 크게 달라질 점은 없을 것이다. 손익계산도 그대로이다. 다만 차이는 있다. 예상외의 부분도 분명히 있었고, 새롭게 정리가 되는 부분도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게 느끼는 차이라면, 지금 분위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더 반대 목소리를 내기 힘들 정도로 일방적인 얘기만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걸보면 우리나라는 예수도 부처도 다 필요없이 무슨 민족종교가 국교가 되어버린 신정일치의 국가가 아닌가한다.

2. 북한이 원하는 것

이번 회담에서 가장 의외였던 점은, 북한이 생각보다 비핵화를 빨리 매대에 올려놨다는 점이다. 다들 핵을 얘기하지만, 북한은 결국 그걸 미끼로 체제 보장을 사들이기 위해서 비핵화에 가격표를 매겨놓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어차피 국제사회의 수많은 막장 국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어설프게 개방만 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는 곧 망각한다. 다만 그럴 경우 그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돈'이 부족해진다는 모순에 빠진다. 세상에 역사적 정의가 있어서 북한의 독재 정권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잠꼬대는 지금 상황에서 만큼은 잠깐 잊어보자.

헌데 이런 북한의 비핵화 판매는 결국 1회성이라는 한계를 넘기가 힘들다. 한 번 사기를 칠 수는 있어도, 두 번째부터는 고객들도 매가 약이라는걸 슬슬 깨닫을 것이니 말이다. 물론 두 번, 세 번 당하고도 몸주고 마음주고 다 주지 못해 안달이 난 나라가 아래에 있기는 하지만, 미국이라는 세계 제일의 바이어를 상대하는 북한에게 그런 동네가게는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북한이 평소 쳐다도 안 보던 그 가게에도 손을 내미는걸 보면 김정은도 김정일이 비핵화 장사를 할 때보다 더 빠르게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눈치를 챈 모양이다.

북한은 어쨌든 가장 큰 바이어인 미국에게 팔아보고자 하지만, 미국은 한 푼도 낼 생각이 없다. 이 상황에서 남한이 그 손을 덥석 잡고 물주를 자처하고 나서면서 북한은 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팔아치울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은 잘 되면 자기 간판 내걸고 잘 안되어도 손해볼 것 없는 거래가 성사되었다. 단순히 거래 자체만 보면 남한이 나름 양자가 불만 안 가질 자리를 마련하기는 했다. 남한이 이 이상한 거래의 물주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이걸 가지고 '운전자'라는 말을 쓰는 모양이지만, 그 부분은 알아서 생각하자.

3. 남한이 원하는 것

왜 남한은 이 이상한 거래의 물주가 된 것일까? 정권이 빨갱이라서? 남한 사람들이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닐 것이다. 없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중요한건, 남한이 원하는 것은 항상 불분명했다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부터 소떼몰이 방북, 금강산 관광, 온갖 단일팀...그렇게 겉으로 내세우는 평화와 통일에 취하다가 얼마 뒤 북한의 깽판으로 현실을 깨닫게 되는 조련을 계속 받아왔다. 다만 이게 감성팔이든 위장쇼든 그동안 계속 먹혀왔다는 것이다. 햇볕정책이 아무리 돼지 오줌보 같은 소리라 해도, 이후의 정권은 좌우 막론하고 이 부분을 신경써왔다.

하지만 지난 번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팀 논란처럼 감성팔이도 슬슬 역풍이 불기 시작하니 요즘에는 슬슬 다른 얘기를 꺼내고 있는데, '경제'이다. 누구 말대로 '통일은 대박'이라는 것인데, 그래서인지 뉴스를 봐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으레 하는 말 다음에 꼭 '경제'가 붙는다. 이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지는 그동안 수없이 증명되어왔지만, 경제적인 관념은 때려죽여도 가질 생각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걸 죄악시 하는 남한 사람들에게는 별무소용이다. 물론 낙관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게 지금 북한의 체제로는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남북경협이 계속 실패를 맛봤던 이유는 어디 사람들 말대로 통일을 반대하는 친일파 후손들의 음모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경제성이 없는지 알아내 그걸 바꿀 생각을 해야하는데, 그게 안되는걸 아니까 어떻게든 나랏돈을 쏟아붓는다. 그리고는 온갖 무형자산을 만들어내 어떻게든 그 헛돈을 합리화 시킨다. 곧 죽어도 선비의 나라라 그런지 그 사이에 벌어지는 온갖 허세 가득한 말까지 더해서. 그럼에도 이 경제라는 떡밥은 오랫동안 한국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 것이다. 정작 본진부터 망하게 생겼지만.

4. 남북의 접점

결국 이 둘을 조합하면 남북대화는 북한의 자리보전과 남한의 자아도취가 만나는 지점에서 형성되었다. 문제는 이 거래를 뭐로 하느냐인데, 비핵화는 남한은 지불하기에 너무 비싸고 북한은 팔기에 너무 아깝다. 그 시점에서 종전선언이 나온걸 보면, 아무리 나라 말아먹는다고 생각하는 집단이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정권은 아무나 잡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한 번 명분만 제대로 챙기면 남한 사람들은 실리를 신경쓰지 않는다. 최소한 그게 정치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버린다. 이조시대 이래로 유구히 내려온 전통이라면 전통이다.

그 밖의 걸림돌은 다 곁다리이다. 천안함도, 탈북자도, 수용소도 전부 위대한 침묵의 일환이고, 싫은건 그저 반대하는 사람들 뿐이다. 그동안은 정말 통일을 바란다면 그 이전에 북한의 정치체제 변화를 한 번은 꾀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것도 아닌거 같다. 전두환을 용서하지 못하고 광주는 기억하자는 사람들이 김정은에게 환호하고 요덕은 잊어버리는 이 이율배반을 보노라면 앞으로 일본 사람들이 2차대전 때의 전쟁범죄에 대해 입을 다무는 모습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패잔병이며, 배신자들이다.

사실 당장의 통일은 어렵기에 북한 정권이 좀비처럼이라도 있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고, 아무리 제재의 고삐를 죄어도 어느 순간에는 푼돈이라도 쥐어줘야 할 필요성도 있다고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 어떻게라는 부분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남북이 어느 선에서는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었는데, 막상 현실에 나타난 접점을 보노라니 다른건 몰라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확실하게 든다. 나름 통일을 열망하는 마지막 세대라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이런 나도 이런 통일을 하기는 해야하는걸까 하는 회의감이 강하게 든다.

5. 일본을 공격한다

미국과 북한의 대화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원론적인 비핵화가 들어간 차원에서 서로 시간을 두고 밀고 당기기를 할 것이다. 그게 그동안의 북미대화였고, 미국도 북한도 결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밑져야 본전이라지만 미국이 왜 이런 일을 할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는데, 미국이 이것까지 걷어차버리면 그래도 사드로 최소한의 줄서기는 해줬던 한국이 완전히 미국에게서 떨어질 우려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문재인 정권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사드 철수시키고 중국에 붙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다만 남한이 남북 소꿉놀이에 빠져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에 별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미국이 동북아에서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사실상 일본 밖에 없어진다. 그러니 지금 아베의 상태가 말이 아니긴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일본의 개헌과 재무장은 더 가까워지는 길로 갈 것이다. 여기에 북한의 비핵화 작업이 지지부진하거나 사실상 중단 상태가 되고 거기에 약간의 운만 더해진다면 일본의 핵무장도 보는 날이 올 것 같다. 그럼 남한도 명분이 생기겠지만 어차피 남한 사람들은 배알이 없어서 핵무장 같은건 하라해도 못한다. 그저 일본만 밉지.

예전에 농담처럼 돌던 말 중에 '일본을 공격한다'는 것이 있었다. 물론 이건 합성이지만 이 합성의 대상이 된 질문이 미국이 남한 정부의 동의 없이 북한을 공격할 때 남한 사람들은 어딜 돕겠느냐는 내용이었는데, 어쩌면 이게 정말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드는게 있다. 그게 꼭 전쟁이지는 않겠지만, 창작물만 봐도 남북이 힘을 합쳐서 미국이나 일본을 물리친다는 얘기는 차고 넘치게 많이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그런 구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근데 이상하게 거기에 꼭 중국은 없다.

6. 필요한 것은 믿음

강도가 칼을 들고 물건을 뺏으려고 하는데 강도가 든 칼을 뺏을 생각을 안하고 돈을 얼마 줘야 하나만 생각하고 있다. 다음 번에 그 칼로 또 돈을 뺏길거라는 생각은 안 하고 돈을 줘야지 어떻게 하냐며 되려 큰소리를 치고 있다. 나아가 형제인데 돈 좀 줄 수 있지라고 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전에 걔들이 칼을 들고 있는 동안 너희는 달래지 않고 뭐했냐며 강도가 아니라 너희들이 잘못한거라고 한다. 그게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이어도 골치 아픈데, 한 나라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앞으로 이런 흐름의 분위기가 더하면 더하지 덜할 것 같지는 않다.

민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랏님 일 하시는데 감히 반기를 들다니라며 목소리 높이는 꼴을 보는 것도, 그게 특히 이런 문제에서 잘 보인다는 것도 참으로 못 봐줄 일이고, 우리 편은 평화 너희 편은 전쟁이라며 초등학생들 네편 내편 하는 꼴이 나라 정치에도 그대로 먹히는 꼴을 보는 것도 참으로 질리는 일이다. 벌써부터 들리는 꽃노래는 마치 여리고의 성벽 무너지는 얘기처럼 무슨 종교같다. 그 교리에 따르면 민족적 열망으로 열심히 기도하면 북한 정권이 갑자기 성인군자가 되는건지 모르겠는데, 뭐가 되었든 불신자는 입도 못여는 모양이다.

아직도 뭐가 변했고 뭐가 나아졌으며 뭐가 대단한건지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줄 수 밖에 없을거 같다. 당신에게 부족한 것은 사고력이 아니라 신앙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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