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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스 애니메이션 1화를 보고


아니메를 안 본지 꽤 되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했던 게임이 애니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1화를 봤다. 그리고 계속 느끼는거지만, 그냥 딱 한국 애니메이션이다. 내가 한국 애니메이션을 잘 안 보고, 또 한국 애니메이션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기 어려운 시절을 겪어봤기에 이런 걸 봐도 별 생각없이 넘어가고는 했는데, 어차피 이제는 한국 서브컬쳐가 망해도 눈 하나 깜짝 안할 생각이라 그냥 작정하고 말해보고자 한다.

흐름이 없다

우선, 이 애니메이션은 흐름이라는게 없다. 상업성이 짙은 물건일수록 셀링 포인트만 있으면 되지 흐름이 무슨 상관이냐 할 지 모르지만, 정말 대놓고 팔아먹기 위해 나오는 물건이라고 해도 흐름이라는게 있다. 그것이 진부하거나 비현실적이거나 자극적이거나해서 작품성을 갉아먹는 것 뿐이다. 근데 그것조차 없다면 답이 없다.

사실 원작인 게임 클로저스는 우리나라 물건으로서는 드물게 이런 흐름을 어쨌든 잡고 나가고 있는 게임이다. 오트슨이라는 작가나 나딕 게임스라는 회사는 잘 모르지만, 이 사람들은 적어도 작정하고 흉내내기로 했고, 잘 냈다. 때문에 어디서 본 것 같아도 흐름이라는 것이 있는데, 애니는 그런 생각 없이 그냥 끼워맞추기로 일관하고 있다.

왠 발전소 얘기가 나오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개연성의 문제는 통크게 넘어가준다 치고, 그래서 이 애니는 무슨 이야기인가? 결국 이세하가 어릴적 마음의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은양 팀에 합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보여줘야 할 것은 이세하의 어머니인 알파퀸에 대한 연출이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처음부터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인 이세하와 이슬비의 만남이라는 것에 집착하여 이슬비의 비중을 키워버리는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물론 도입부에 그런 장면이 들어가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15분짜리 1편에 모든 이야기를 집어넣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세하 이야기를 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상업성을 고려해 이슬비를 넣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면, 이 제작진은 정말로 원작 게임을 안 해본 사람들이다. 이 게임의 이야기는 전통적인 방식대로 남주인공인 이세하가 이야기를 끌고가며, 이슬비의 존재감은 뒤로 갈수록 드러난다. 그리고 이슬비의 이야기는 이세하의 이야기가 어느정도 풀려서 알파퀸이 나와야지 설명이 된다.

쉽게 설명하자면,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을 보면 된다. 이 라노벨의 여주인공이 미사카 미코토라는 것은 세상천지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미사카 미코토가 여주인공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어느정도 전개가 된 후이고, 그 전에는 존재감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어쨌든 인덱스가 이야기를 끌고간다. 처음부터 억지로 미사카를 내보내지 않는다.

때문에 이 애니는 이슬비와 이세하가 나왔다는거 말고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원작의 기본적인 틀을 어지럽혀 놨으니 이야기도 원작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야했고, 각본을 누가 썼는지는 몰라도 엉망으로 써버리는 바람에 정체불명의 흐름을 가진 물건이 나와버렸다. 막말로 이 게임에서 이슬비 팬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강약이 없다

흐름이 없다보니 강약도 없다. 그냥 액션씬만 화려하게 그리면 사람들이 대단하게 볼거라 생각하는 것인가? 그런거였다면 이 게임이 왜 벨트스크롤 액션으로 나왔겠는가. 이 게임은 3D 게임이 아니며, 화려한 연출을 앞세운 게임도 아니다. 무엇보다 해야할 것은 이야기를 통해 현실세계와의 접점을 마련해야 하는데 뜬금없이 발전소로 보낸다.

애니 제작진이 원작 게임을 하면서 첫 장소가 왜 강남역이었는지를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렇게 애니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1화에서 세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 하나는 이세하의 심리적 고통을 조명하는 것, 두 번째는 이슬비를 통해 클로저를 소개하는 것, 마지막으로 싫어하던 이세하가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이다.

이 애니는 이 세 부분에서 그냥 다 엉망이다. 이세하의 고통은 전해지지 않고, 이슬비는 정작 클로저로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으며, 이세하가 참전하게 되는 것은 하나도 극적인 부분이 없다. 그렇게 스스로의 특색을 지워버리면서 이 애니에서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없어졌다. 중간에 나름 웃긴장면 같은걸 넣어봐야 뜬금없기만 할 뿐이다.

이렇게 특색이 없다는 것은 심지어 작화조차 그렇다. 이 애니의 그림을 보면 인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배경이나 연출은 쓸데없이 화려하다. 인물의 문제는 다음에 말할 부분이니 넘어가고, 배경이나 연출을 보면 이 애니가 이야기를 담으려고 만든건지 제작사의 기술력을 과시하겠다며 만든건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인가?


작화의 질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림 점수라는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산수는 할 줄 알아도 수학은 할 줄 모르는 것에 불과하다. 이건 잘 그린 그림 뽑는 대회나 입시가 아니다. 아니, 설령 이게 대회나 입시 같은거라고 치더라도 가장 중요한 과목인 액션에서 그렇게 형편없는 성적을 받으면 나머지 성적이 좋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없다.

다른 캐릭터들, 특히 상품성이 강한 서유리의 등장을 미루면서 이슬비와 이세하에게 집중한 선택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정작 이세하와 이슬비를 못 살리다보니 차라리 대놓고 서유리 내보내면서 상품성으로 밀어붙이는게 나을 뻔했다. 근데 여기가 일본도 아니고 남녀주인공을 모두 말아먹고 그런 쪽의 상품성만으로 효과를 거둘 것 같지는 않다.

밥은 맛있지 않아도 먹어야 할 때가 있지만, 애니는 봐야할 이유가 없으면 안 봐도 된다. 제작진은 마치 식당을 운영하는 요리사처럼 맛을 내는데 열중해도 모자란데, 오히려 맛이 더 없어져 버렸다. 그래놓고 한국 애니라는 일종의 의무감에 호소할 생각인건지는 모르겠는데, 이걸 하루이틀 본게 아닌 내 입장에서는 다 쓸데없는 짓이다.

색기가 없다

이 애니에서 가장 웃겼던 장면은 이빛나의 등장이다. 원작과 달리 전혀 뜬금없는 곳에서 아무 맥락도 없이 바니걸 복장을 한 이빛나를 보자면 이 애니 제작진은 진짜 게임 안 해봤다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마 서유리를 나중에 써먹기로 하고 1회성으로 쓰고 말 생각이었던 모양인데, 이쪽 방향으로 갈거면 1화가 중요하다.

흔히 말하는 수위 높은 애니의 경우, 1화부터 강렬한 장면을 넣어놓는게 중요하다. 그게 화제를 모으는 것도 있지만, 일종의 방향을 천명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벗겨도 왜 벗기는지 이유가 있어야 한다. 때문에 억지 설정이라는 것도 나오기 마련인데, 이 애니는 아예 설정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다만 왜 이렇게 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성인만화를 그린다는 사람들조차도 색기를 그리는데 약하다. 때문에 막장드라마 아니면 NTR로 빠지는 일이 허다한 것인데, 누가 뭐랄까봐 선수쳐서 말하면 '예외는 있다'. 하지만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하렘물 하나 제대로 그리는 만화가도 본 적 없다. 아무튼 중요한건,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경우이다. 이것은 애니기 때문이다.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 상업 작품이 될수록 그런 예외가 발현되기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냥 이걸 할 줄 모른다. 이세하가 서유리도 아니고 이빛나의 바니걸 복장을 보고 얼굴이 붉어지는게 무슨 색기인가? 차라리 그림이라도 잘 그렸으면 모르는데, 무슨 양심의 가책이라도 있는지 그런건 또 끝내주게 못 그린다.

원작 게임은 이 부분에서 솔직했다. 오타쿠를 겨냥한다는 비아냥을 듣든 말든 할 일은 했다. 애니는 그 쪽을 더 파고들든가, 아니면 게임처럼 메인 스토리 쪽에도 무게감을 실어주거나 했어야 하는데 둘 다 못했다. 마치 착한 아이 소리를 듣고 싶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다.

아직도 우리나라 애니를 보면 어린아이 같다. 아직도 어리지 않냐며 일방적으로 감싸는 부모들이 있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나도 어느정도 그런 입장에 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오랫만에 보는 애니인데도 그것을 더 확인만 하게 되었다. 물론 이제는 애니가 아니라 서브컬쳐 자체가 망해도 아무 상관없지만 말이다.

기회가 왔으니 마음으로는 이것도 만들고 싶고 저것도 만들고 싶고...이해는 가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한계가 있다. 그것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애니는 다 잘할거라는 어설픈 욕심만 보인다. 그것이 해야할 일을 막고, 드러나야 할 부분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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