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03일
성우 디비기 6 - 사와시로 미유키 (沢城みゆき)

2007년 말, 사와시로 미유키가 성우활동을 중단하고 연극을 한다느니, 유학을 간다느니 했던 소문이 돌았던 적이 있었다. 이런 사정에는 밝지 않은 편이라 몇 달 뒤 알게 되었는데, 어쨌든 이 때 내가 가졌던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이제 애니 그만 봐야겠네.'
물론 그냥 오해로 밝혀졌고 사와시로 미유키는 지금도 멀쩡히 활동 잘하고 있지만, 그때는 진짜로 그러려고 했다.

내 애니를 보는 가장 큰 두 가지 이유가 사와시로 미유키와 샤프트(SHAFT)의 신보 아키유키(新房昭之) 감독이다. 그런데 그 신보 아키유키 감독을 알게 된것도 사와시로 미유키가 그 작품에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으니 내 애니 이력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사와시로 미유키라고 할 수 있다. 로젠 메이든(Rozen Maiden)으로 알게 된 이 성우 때문에 난 남들이 관심도 없는 성우의 이름을 줄줄 외고 다니기 시작했으며, 단지 목소리 때문에 이런저런 애니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관련 음악이나 만화, 게임 등으로 이어졌고, 다시 새로운 애니에 대한 관심에 다다랐다. 이 모든것이 사와시로 미유키에게서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신보 아키유키 감독이 있음은 앞에도 말했고, 기타 마츠오 코우(松尾衡) 감독, 만화가 PITCH-PIT, 코게돈보(こげどんぼ*) 등이 있다. 이들 작품에는 대부분 사와시로 미유키가 캐스팅 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2. 낙원에서 지상으로
1999년, 디지캐럿(デ・ジ・キャラット) 오디션에 참가한 13세(1985년생)의 꼬마아이는 1등은 못하였지만 심사위원의 눈에 들어 푸치코로 데뷔를 하게 된다. 이후 이 아이는 그 어린나이부터 성우로서의 길을 착실하게 밟아나가며 남들이 갓 데뷔하거나 아직 신인티를 벗을까 말까한 20대 중반에 이미 양질의 10년치 경력을 쌓아두게 되었다. 요즘 10대 성우들이 많이 등장하고 개중에 여러 재능있는 인재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적어도 성우라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2000년대 초 사와시로 미유키가 보여주었던 놀라움에 필적할 만한 경우는 없다.

사와시로 미유키의 놀라움은 이러한 모든 것이 대부분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디지캐럿에서는 분명 놀라운 연기였지만, 사실 그렇게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성우는 아니다. 대부분의 연기가 대사 하나, 호흡 하나 고려해가면서 나오는 연기이다. 따라서 그렇게 나오는 사와시로 미유키 특유의 연기톤은 어느 캐릭터를 연기하든 남아있기에 특징이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해야할 일이 많다는 점이며, 듣기에 따라서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와시로 미유키의 최대 장점은 이런 힘겨운 연기를 많이, 그리고 엄청 다양하게 해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10년동안 말이다.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데뷔적부터 쌓아온 어린아이 연기는 거의 완성단계에 접어든 듯 하다. 대표적으로 우타와레루모노(うたわれるもの)의 아루루(アルルゥ).
그렇게 쌓인 10년의 내공은 그녀를 무시무시한 경력과 실력의 소유자로 만들어주었다. 굳이 10년 따질것도 없이, 그 어린나이에 그렇게 화려하게 데뷔를 하고도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워나가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는 점에서 그 결과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가장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가장 험난하고 힘든 길을 택하여 그것을 철저하게 노력과 준비성으로 극복하는 길이란 택하기도 어렵고, 택한다고 해도 거기서 살아남기 어렵다. 그런 아수라장을 거치고 올라온 사람이 무시무시한 강자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닐까?

물론 그만큼 사람운이 있고, 작품운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에 대하여 엄격했고, 그렇게 한 길만 쭉 파내려갔다. 수험 준비 때문에 라이브 콘서트에 참가하지 않은 일이라든지, 인터뷰 등에서 말이나 차림을 일부러 어른스럽게 하는 행동이라든지, 성우 경력이 10년째가 되었음에도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한 끝에 극단에서 연극활동도 시작하는 등의 여러 일화들은 운이 어떻고의 말 따위를 꺼내지도 못하게 해준다. 하늘같은거 별로 믿을게 못되기는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하는 말이 여기에서 만큼은 명백하다.


그러다보니 1인 다역의 연기도 많다. 대표적으로 네기마(ネギま!?)에서 맡은 1인 4역. 출처
이런 연기는 들리기보다 연기폭이 넓은것처럼 만든다. 물론 실제로도 폭이 넓다. 도도한 아가씨에서부터 시작해 꼬마아이, 소년, 성숙한 여성, 동물 등 못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서 해당하는 캐릭터마다 특징적인 부분을 일부러 집어넣어서 연기를 일부러 분리시킨다. 그 덕분에 그녀는 여러 작품의 여러 캐릭터를 함에도 연기가 잘 겹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너무 드러나, 예민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사와시로 미유키의 연기를 항상 불편하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어색하다는 소리 안 나오면서 그 특유의 연기를 잘 살리는 것이 악역 연기(신쿠라든가, 신쿠라든가……)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사와시로 미유키의 악역 연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블랙 블러드 브라더스(Black Blood Brothers)의 카산드라 질 워록(Cassandra Jill Warlock )은 정말 마음에 드는 연기였는데, 정작 애니가 별로였다.
그런데 올해 사와시로 미유키에게 여러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우선 연기에 있어서, 과거와 같은 엄격한 분리보다는 좀 더 되는대로 연기를 하고 있다. 이는 10년의 경력에서 오는 자신감 일수도 있고, 혹은 작위적인 것을 줄이고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 그렇게 올해 여러작품에 목소리를 냈는데, 일단 그녀의 진화는 성공이다. 마치 한참을 탑을 쌓아올리다가 이제서야 서서히 미관을 다듬기 시작했다고 할까. 그야말로 끝을 모르는 성우이다. 아무리 팬이지만 적어도 연기력에 있어서만큼은 최고라 생각하는 성우는 아니었는데, 조만간 그 평가도 뒤집어버릴 기세이다.

무언가 노래에서도 이런게 느껴진다. 특히 최근 완결된 GA 예술과 아트디자인 클래스(GA 芸術科ア-トデザインクラス), 바케모노가타리(化物語) 두 작품의 캐릭터송을 들어보면 더욱 그렇다.
4. 그 목소리 속에 담긴 무언가
다만 그녀의 한계라면 한계일까, 10년 동안 성우로서는 몇 갑자의 내공을 쌓았을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엄격한 성격때문인지 '스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나이에 비해 많은 경력은 나이 많은 다른 성우들이나 스태프들과 '아직 사회인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여러 일화들을 전해주고 있다. 하물며 대중들의 인기일까. 특히 요즘처럼 성우가 성우 이외의 무언가를 보여주어야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때에 사와시로 미유키는 다른 중견성우들과 같은 급에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외모도 중견성우라는 농담이 팬 입장에서는 약간 뼈아픈 말이기도 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자성우 1, 2위인 사와시로 미유키(中)와 후지무라 아유미(藤村歩, 左). 그저 레터 비(Letter Bee, テガミバチ) 방영일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오른쪽의 남자는 후쿠야마 쥰(福山潤)…인가? 출처
영화배우 중에 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이라는 여배우가 있다. 비교가 어렵기는 하지만 난 사와시로 미유키를 볼때마다 나탈리 포트만이 생각난다. 화려한 데뷔(Leon, 1994), 이후 인기에 물들기보다 착실하게 쌓아간 연기 경력, 뚜렷한 자기 주관, 그리고는 다시 연기로서 사람들을 주목하게 만드는 과정 등 여러모로 비슷하다(채식주의자인 점도 같다. 다만 나탈리 포트만은 배우 생활을 정리하고 의사가 되려 한다는 점이 큰 차이겠다). 사실 인기나 돈벌이에 능한 연예인은 많아도 자기 관리나, 본연의 모습 등에 충실한 연예인은 찾기 힘들다. 특히 여자 연예인은 시대가 그녀들을 더 화려하게 만든 대신 더 수동적으로 만든다. 그러기에 그 속에서 이채를 발하는 모습에 끌린것일지 모른다. 

베스트 캐릭터 - 로젠메이든의 신쿠(真紅)
# by | 2009/10/03 02:31 | Hobby - Ani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