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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이 좋다 - 1987




1.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는 배트맨에게 죄수의 딜레마를 응용한 게임을 제안한다. 죄수가 타고 있는 배와 일반인들이 타고 있는 배, 양 쪽에 폭탄을 설치하고 그 격발 스위치를 상대편에게 건넸을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까하는 질문은 다크 나이트의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주요 내용이다. 영화에서는 결국 우리가 아는 그 결말이 나오고 그 결말은 그럭저럭 어울리지만, 사실 그 결말은 그동안 현실과 영웅을 절묘하게 타고다니던 이 영화에서 조금은 어색한 부분이다. 인간사에서 보여지는 수많은 일들이 그런 결말을 쉽게 확신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꼭 필자의 생각이 꼬여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실제 벌어졌던 일'을 기반으로 했을 경우, 그것이 비현실에 가까운 선택이라 해도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그렇기에 거꾸로 창작자는 그에 관련된 각색의 자유를 얻는다. 이 영화 역시 1987년에 실제 벌어졌던 일을 가져옴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벌이는 우연이라 해도 될만큼의 극적인 장면들을 편하게 붙이거나 엮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작업은 아니기에 그동안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창작물들이 수많은 무리수를 둔 걸 볼 수 있었는데, 이 영화는 무리가 되지 않는 선을 지키면서 이야기를 엮으면서도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은 장면을 매우 효과적으로 붙여놓았다.

 솔직히 말하자. 민주화운동은 이제 거의 현대의 성역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 성스러움을 완전히 부인하지 않지만, 그것이 고개조차 돌리지 못할만큼 꽉 짜여져 조금도 다른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민주화 운동을 그리는 창작물들, 나아가 운동권이나 시민운동을 그리는 창작물들은 천편일률적인 선악구도와 그를 자극하는 감정선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태반이고, 감히 희화화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이게 심한 경우 이쯤되면 결국 색깔만 바꾼 배달의 기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되는데, 처음에는 이 영화 역시 그 정도 선이라 생각했다.

 누가봐도 시의성을 노리고 만든 1987년의 그 일을 다룬 영화, 알맹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다르겠는가. 헌데 얼마전에 한 유투브 리뷰(링크)를 보고 흥미가 생겨서 보게 되었는데, 실제로 전혀 의외의 영화가 나와주었다. 무엇보다 이제까지 한국 영화에서 다룬 영화, 특히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영리함이 있다. 그걸 알게되자 이 영화의 감독이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이라는걸 알았으니 스스로도 요즘 한국 영화를 안 보기는 했구나라는걸 느끼기는 했지만, 아무튼 장준환이라는 이름을 보니 그 영리함이 어느정도 납득이 된다.




2.

 이런저런 영화에 대한 이야기야 어차피 남들이 다 할테니 넘어가고,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집중해서 보게 된 부분만 꼽자면 우선 2가지이다. 우선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악역에게 주었다는 점이다. 다크 나이트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히스 레저의 조커 목소리인 것처럼, 이 영화에서는 김윤석이 열연한 박처원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경우 악역에게도 어느정도의 매력이나 나름의 정당성 정도는 주어야 하는데, 6월 항쟁을 소재로 삼으면서 이런 모험을 하는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제는 관객들이 그 정도 구성은 받아들일만큼 현대사를 대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승리하지 않는다는걸 의심할 필요 없듯이, 꼭 역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감독이 박처원을 정의로 그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당연함'을 누구나 공감하게 되면 악역을 매력적으로 그리는 것은 오히려 선역을 부각시키는 좋은 장치가 된다. 내가 상대보다 강하거나 이길 것을 미리 안다면 상대를 오히려 더 강하게 보이게 해주는 것이 거꾸로 나를 더 강하게 보이게 만드는 법이다. 박처원에게도 이유가 있고, 그의 부하들도 인간적인 고민을 하면서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며 당시의 엄혹한 현실이 뿌리깊게 스며들었음을 말하고, 그걸 무너뜨리는 과정을 그리며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그렇게 악을 부각시키면서 그럼에도 악에 맞서는 선이 있다고 하는 구성 방식은 요즘 왠만한 선악구도에서는 당연한 듯이 써먹는 방식인데, 이상하게 한국에서는 이 두 가지 중 하나가 꼭 결여된다. 특히 근현대사를 다룬다면 그러한데 악을 부각시키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여 선역을 단순 성자로 만들거나, 아니면 악에 맞서야 한다는 점을 희석시켜 선악구도를 숨기려 한다. 전자가 광주항쟁이나 4.3사건을, 후자는 북한을 소재로 한 창작물에서 주로 보이는데, 사실 평범함이 곧 선이라는 착각을 자주 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악의 평범성을 그리는 시도는 곧바로 미화 논란을 불러오니 그런 걸수도 있다.

 이것은 이야기를 영리하게 구성하는 것보다는 자꾸 현실과 접목시켜 무언가를 이끌어내려는 목적성을 가지고 근현대사를 다루기 때문으로, 그렇게 되니 이야기는 반쪽만 그려질 수 밖에 없고 결국 마지막에 기대는 것은 '감정팔이'가 된다. 개인적으로 근현대사를 다룬 창작물에서 그걸 벗어난 것이 드라마 제5공화국이었는데, 이 드라마는 12.12를 그리면서 전두환 미화 논란에 휩싸였지만 결국 그런 전두환에 맞선 광주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서 그 희생이 더욱 숭고하게 그려졌다. 그렇기에 굳이 감정을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감정이 이끌어오르게 되었는데, 영화에서는 처음 겪어본다.




3.

 2번째로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감탄했던 것은, 어쩌면 박처원의 방식대로 일이 처리되었으면 우리가 아는 그것과 다른 결말이 나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할만큼 박처원의 일처리가 완벽했다는 점이다. 박처원은 시종일관 당당하며, 항상 답을 가지고 온다. 옳고 그름을 떠나 분명 신념과 철학이 있고, 그럴만한 인생을 살았다. 게다가 이걸 요즘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는 모르지만, 그가 말하는 '반공'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약점이 없는 그가 처음 박종철의 '사망'을 접하면서 그것을 '보따리 터진 일'로 여기는 순간, 영화는 그가 인간을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이후 이야기는 박처원이 뭘 실수를 해서가 아니라, 그 '보따리 터진 일'을 시작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기저기서 터지는 일과 그것에 반응하는 '각하의 심려'가 엮이면서 일이 박처원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기 시작한다. 마치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가다가 결국 우연과도 같은 일의 연속으로 점차 수습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는 구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몰락이 결정되어지는 곳이 예수가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 앞이라는 것은, 그가 인간사를 주재할 수 있어도 신의 영역인 목숨을 어찌해선 안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오히려 실제 사건과 다른 내용이기에 감독의 의도가 더 드러난다.

 이런 박처원의 모습은 곧 그가 상징하는 군사정권을 말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정당함은 유능함과 이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국 사람들은 거기에 자주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러다보니 악역은 항상 평면적이기 일쑤였다. 하지만 박처원의 복합적인 모습은 당시 군사정권의 부당함을 유능함과 별개로 떼어놓고 바라보게 만든다. 물론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4.13 호헌조치가 전두환의 정치적 실책이었다 보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대사 이야기이고, 영화에서는 간단하게 말한다. 아무리 유능하다해도 누군가를 고문하고 죽일 수 있는건 아니라고.

 한국 영화계가 어느정도 좌파 편향적이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고, 그 사람들에게 전두환은 그야말로 악 그 자체라는걸 생각하면 그런 전두환 정권을 이만큼이나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의외인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정치적인 부담없이 순수하게 1987년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 마지막에 이한열이 등장한다는 것은 훌륭한 방점이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그 잘생긴 남학생이 이한열이라는 것은 당시를 안다면 누구나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엮어놓은 줄이 너무도 튼튼하기에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다.



4.

 다만 이 영화의 각색이 항상 좋은건 아니다. 무엇보다 실제 역할을 했던 인물(변호사 고영구와 그 가족들)까지 빼면서 집어넣은 가상의 여자대학생 연희는 분위기 환기용으로는 몰라도 그 역할이나 이한열과의 관계 등이 다소 진부하다. 혹자는 연희가 일반 시민들을 상징한다며 호평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에서 시민들의 역할은 박종철을 접하고 난 뒤에 6월 항쟁을 일으키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벌써부터 그럴 필요가 없었던 문제인데, 이런 성급함은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지겹도록 답습해왔던 '선량하고 완전한 백성'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한 부분이라 아쉽다.

 이한열과의 관계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게, 아예 이한열을 빼버릴게 아니라면 박종철과 이한열을 잇는 장치가 필요하기는 했다. 박종철과 이한열 사이를 공백으로 놓아버리면 그 많은 사람들이 우연과도 같이 한 땀 씩 엮어서 만든 이야기에 확 구멍이 나버리다보니 내놓은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또 하나 재밌는건 그렇게 김정남의 마지막 은신처가 바뀌면서 박처원이 몰락하는 공간인 교회를 집어넣을 수 있게 되었고, 이게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는걸 생각하면 참으로 절묘한 수가 되었다. 꼭 종교간의 안배가 아니더라도 실제 향린교회가 있었기도 하고 말이다.

 좋은 사극은 단순히 고증을 잘해서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역사는 항상 파편적으로 전해져오기 마련이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잘라내고 덧붙이는 부분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허나 근현대사는 그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항상 그 작업이 어긋나기 마련이었는데, 그 결과물이 이 정도 선에서 그려질 수 있다면 소재가 달라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영리했고, 앞으로 이런 영화를 바라볼 수 있는 표준이 되어주었으며, 무엇보다 재밌었다. 이런 영화가 재밌을 수도 있다라는 것이 참으로 생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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